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의 변증법 (문단 편집) ==== 기술개발로 [[임신]]과 [[출산]]을 없애자 ==== > "[[창세기|남자는 땀 흘려 일하고 여자는 고통과 산고를 참아야 하는]] 이중의 저주는 처음으로 인간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테크놀로지를 통해 해소될 것이다. 페미니스트 운동은 20세기의 인류 생존을 위해서 필수적인 새로운 생태학적 균형을 받아들이는 문화를 창조한다는 중대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 ----- > - p.293 오늘날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애 낳는 기계' 가 되어버린 가부장적 사회 속의 여성의 지위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 심지어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여자들이 [[페미니즘]] 한다고 설치니까 애를 안 낳는다, 여자들을 [[대학교]]에 보내니까 그런 거다" 라는 식으로까지 불평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덩달아서, 여성이 임신과 출산이라는 주박에 구속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페미니즘 진영 내부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논의되어 왔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파이어스톤의 논리는 단연 시선을 잡아끈다. 파이어스톤이 정말로 진지한 태도로 제시한, 여성들에게 애 낳는 역할을 강요하면 안 되는 이유는 정말 그 누구보다도 담백(혹은 솔직)하다(…). '''"그야 아프니까! 애 낳는 거 힘들다고! 아픈 걸 왜 구태여 견뎌야 됨?"''' 이 직설적인 (혹은 뭇 사람들의 원초적인 심금을 울리는) 논변은 본서의 288페이지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드러나는데, 특히 저자가 제시한 가상의 대화가 제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대화에서 저자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서, 출산을 마치 "커다란 [[호박]]을 누는 것"(shitting a pumpkin)과 같다고 비유하고 있다(…). 즉, 임신과 출산은 막상 그것을 자신의 몸으로 직접 견뎌내야 하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심지어 '''인간성을 상실할 정도로 감당하기 힘든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종의 출산파업을 하자거나 [[반출생주의|아예 다같이 애를 낳지 말고 인류 모두 절멸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어머니가 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삶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대안으로서 '''인공생식과 인공자궁, 인큐베이터''' 기술을 통해서 '''재생식의 문제가 여성을 비인간화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답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한다. 배 아파서 애 낳는 숙명은 기술이 부족할 때는 마치 인간 본성처럼 여겨졌지만,[* 그런데 고통스러운 출산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인간의 본성적 숙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도덕적 의무감으로 간주되는 것일 수도 있다. 예컨대, 현대에 들어 [[무통분만]]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은 "출산할 때 한번 제대로 아파 봐야 진짜 [[어머니]]가 되는 거다, 안 아프게 애를 낳으면 어떻게 [[모성애]]가 생기겠느냐" 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모성애가 본성이 아닌 사회화의 결과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생각에 이 사람들이 동조할 가능성이 낮은 이상, 이 사람들은 어머니로서의 도덕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통의 의례' 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실상은 오히려 인간 본성을 크게 해치는 저주와도 같다는 것이다. 그저 기술력이 없어서 견뎌내 왔던 것일 뿐. 물론 인간이 자신들의 [[자궁]]이라는 생물학적 조건에 의지하지 않고 재생식을 한다는 건 당장 달성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조건은 그리 쉽게 기계와 장치들에 의해서 대체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기술의 진보로부터 희망을 발견한다.''' 본서 1장과 10장에서 진하게 느껴지는 미래 기술에 대한 [[낙관주의]]와 함께, 저자는 인류가 자연을 초월하기 시작했다고 믿는다. 우리는 "더 이상 한낱 동물이 아니기 때문" 에, 그리고 "자연계가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아니" 기 때문에(이상 p.23) 자신이 제시하는 이상이 언젠가는 반드시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그런 기술적 밑바탕이 확보된다면, 그때부터 인공생식의 도입을 반대해야 할 모든 논증은 그 정당성을 잃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자녀를 가지지 않겠다는 결정이나 자녀를 인공적인 수단으로 가지겠다는 결정이 전통적인 자녀 출산만큼 정당한 것이 될 때까지, 여성은 여성의 역할을 강요받는 것이나 다름없다"(p.289). 물론 이런 기술적 수단들이 권력자들의 손에 쥐여져 있게 된다면 그것은 악몽 같은 [[디스토피아]]가 되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술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의 문제이지, 기술발전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와 같은 저자의 관점은 전반적인 페미니스트들의 관심사에 비하면 굉장히 이질적이고 독특한 것이어서, 즉각 열렬한 환영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이런 논리는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여성이 자신의 몸과 그 생물학적 조건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임신과 출산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지, 기술의 발전이 페미니스트들에게 기회가 될 것인지 아니면 위협이 될 것인지 등에 대한 많은 논의들을 이끌었다. 하술하겠지만, 오늘날에도 인공자궁을 통해 여성들의 "애 낳는 기계" 로서의 속박을 끊자는 식의 제안은 '''테크노 페미니즘'''(techno-feminism)과 같은 분파로 이어졌고, 남녀의 구분 자체를 없애버리자는 주장과 결합되어 심지어 '''[[포스트젠더리즘]]'''으로까지 연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컨대 컬처럴 및 에코 페미니즘과 같은 다른 분파들에서는 임신이나 출산과 같은 여성의 모성이 가부장제의 폭력 앞에서 위협 받고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이는 이쪽 진영에게는 없애야 할 생물학적 쇠사슬이 아니라 도리어 지켜내야 할 소중한 여성의 영역이 된다. 하지만 어쨌거나 파이어스톤이 제시한 페미니즘 유토피아에 있어서, 임신과 출산의 의무를 기계에 아웃소싱(?)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과학만능주의|과학기술에 대한 환상]](과학기술이 모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점점 더 극대화되어가고 있는 21세기에 와서는, 이러한 기술적 수단으로 임신 출산의 문제 및 육체적 차이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은 상당히 인기를 얻고 있다. 굳이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소재는 SF물의 단골 손님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